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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더볼의 짧은 리뷰

그리운 망원동 냄새 < 망원동 브라더스 >

by Thunderball 2021. 9. 12.

- 구독 경제의 덫에 단단히 걸려버린 요즘, 난 다시 책을 읽는 데 집중을 하고 있다. 매일 밤, 끌어안고 살던 넷플릭스마저 끊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텍스트를 읽는데 온갖 정보들이 담긴 헤비한 글들을 읽자니 진도가 좀처럼 나가질 않는다. 뭣보다 글이 재미가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 그러던 차에 북클럽에서(난 Yes24에서 서비스 중인 ‘북클럽’을 이용하고 있다. 그 이유는 밀리의 서재보다 싸기 때문이다. 북클럽의 가장 싼 한 달 구독료는 5500원) 가장 인기있던 김호연 작가의 ‘불편한 편의점’을 우연히 읽게 됐다.(사실 쪽수가 그리 많지 않았다. 아이패드로 글을 읽을 때 책의 쪽수가 많으면 그리 달갑지가 않더라.)



- 책의 문장도 담백해서 수월하게 읽히는 편이었고 뭣보다 내용이 현실에 있을 법한 혹은 있었으면 하는 가슴 따뜻한 우리내 이야기여서 나름 힐링이 되는 기분이랄까. 최근 빅 이벤트를 앞두고 마음이 붕 떠 있어 한가지에 집중하기 힘들었던 내게 딱 필요했던 유형의 책이었다.

- 아무튼 이틀만에 ‘불편한 편의점’을 다 읽게 됐고 순전히 이 ‘김호연’이라는 작가의 작품을 더 보고 싶다는 생각에 작가의 책을 서칭하게 됐다. 그리고 다음으로 선택한 책은 바로 ‘망원동 브라더스’



- ‘망원동’에 약 2년간 살아봤던 나로서는 책의 제목부터가 반가웠다. 2010년대 초반 난, 홍대 - 상수 - 합정- 망원일대를 수없이 나다니며 많은 추억을 쌓아왔었고 자주 타고 다니던 ‘17번’ 버스가 책에 나오자 괜스레 반갑기도 했었다.

- 책 내용 또한 나의 망원 시절과 비슷했다. 물론 책 내용과 달리, 내 집 아니 내 (지하)작업실 안에 다른 사람들이 들어와 살지는 않았지만, 당시 망원동 시절 내가 가지고 있던 고민과 그 시절의 나와 주변인들의 행동거지(그들의 찌질함까지!)를 책의 등장인물들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모든 우리내 청춘들이 그런 시절을 한번씩은 겪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자긴 특별한 꿈도 없고 그저 학교라는 버스를 타고 가다 고시라는 정거장에서 내린 뒤, 세상이라는 버스로 환승하지 않는 것일 뿐이란다. 다들 인생 연체된 건 똑같다.”


- 모두의 인생이 연체된 건 같다고 하지만 주위를 돌아보면 내 인생은 남들보다 더 오래 연체된 것 같다. 나만 혼자 너무 많은 정거장을 거쳐온 것이 아닐까하는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체념을 한 건지 아니면 성숙을 한 건지, 나이가 하나씩 들다보니 그 사실마저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되더라. 그러니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춘들이 있다면 인생의 환승이 뜻대로 되고 있지 않다고 해서 너무 조급하지 않았으면 한다. 어떻게든 될 거라고 본다. 그리고 어떻게든 적응을 하고 어떻게든 살아가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

그리운 망원시장. 망원동이 더 그립고 따뜻하게 기억되는 건 망원시장의 존재도 한몫을 한다고 본다.



- 인생을 살면서 성북동, 망원동, 안산, 인천, 경주, 포항 등지에서 살아봤지만 망원동만큼 그리운 곳은 없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가 망원동에 살았던 시절은 내 청춘의 한 가운데에서 정말 내가 하고자 했던 것을 한 시절이었고, 그 곳을 떠나겠다고 결정을 하기 전까지, 가난했지만 가장 청춘답게 보냈던 시절이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난, 망리단 길이라는 게 생긴 이후엔 망원동에 다시 간 적이 없다. TV에 망리단 길이라며 소개를 해주는 장면들을 보면서 ‘저기가 저리 변했군’ 정도로 그쳤을 뿐이었고 다시 그곳에 갈 ‘용기’가 나지 않았었다. 그리운 곳이지만 망원동을 떠나면서 겨우 묻어뒀던 괴로운 기억들이 다시 고개를 내밀까봐 그간 겁이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기억들마저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내가 됐기에 이젠 다시 망원동의 냄새를 직접 느껴보고 싶다.

- 책은 모두가 훈훈하게 망원동에 모여 사는 것으로 결말이 지어졌지만 내 망원동 작업실을 거쳐간 몇 안 되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젠 연락도 되지 않는다. 물론 그때의 기억만으로도 충분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큰 서운함 같은 건 없다. 다만 홍대, 합정에서 술을 진탕 마시고 그 딱딱하고 추운 작업실 바닥에서 하룻밤을 보냈던 대학 친구들은 여전히 연락을 하며 지내고 있다. 달라진 점이라면 이젠 한국에 나만 홀로 남아 있다는 것. 친구 한 명은 출장으로 가족과 함께 헝가리로 내후년까지 있을 예정이고 다른 한 명은 작정하고 독일로 떠나버려서 몇 년째 페이스 타임으로 얼굴만 보고 지내고 있다. 보고 싶은 친구들이지만 이 놈의 망할 코로나가 끝나야 내가 유럽으로 가든 지들이 한국으로 오든가 할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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